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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피해자’ 이 중사는 어떻게 죽음으로 내몰렸나

  • 정은지
  • 21-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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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사건 발생 뒤 무마 시도·부실 수사·피해자 방치 군의 무능·인권 경시가 불러온 ‘조직적 살인’ 비판서욱 국방부 장관이 2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영안실에서 공군 이아무개 중사를 추도하고 있다. 연합뉴스성추행 피해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이아무개 중사 사건은 ‘미투 운동’이 시작된 지 3년이 넘었는데도 성범죄를 가볍게 여기는 군의 후진적 문화,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적당히 은폐·무마하려는 군 특유의 습성, 신속하고 합리적인 수사에 실패한 군사경찰의 무능함 등이 중첩돼 일어난 비극이라 해석할 수 있다. 군 안팎에선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최고 상급자까지 보고와 조치 과정을 포함한 지휘라인 문제도 살펴보라”한 만큼 서욱 국방장관과 이성용 공군참모총장이 어떤 형태로든 지휘 책임을 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 보고 있다. 이 중사가 극단적 선택에 내몰리게 되는 과정은 세 단계로 나눠 볼 수 있다. 첫번째는 부대의 ‘무마 시도’였다. 이 중사는 3월2일 밤 원치 않는 회식에 참여한 뒤 관사로 복귀하던 도중 차 안에서 선배인 장아무개 중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이 모임은 상관 노아무개 상사 지인의 개업을 축하하는 사적 모임으로 총 다섯명이 참석했다. 모든 시민이 엄격히 지키고 있는 코로나19 방역지침(모임 참석인원 4명 제한)까지 위반해가며 여성인 이 중사를 억지로 불러낸 것이다.성추행 사건이 발생한 뒤 상관들은 이런 사실이 외부로 알려질까 우려해 무마를 시도한다. 사건 다음날인 3일 상관 노아무개 준위는 이 중사를 저녁 자리에 불러 “살면서 한번쯤은 겪을 수 있는 일”이라며 지난 사건을 없던 일로 해 달라고 요구했다. 회식을 주도한 상사 역시 “함께 회식에 간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고 압박을 가했다. 그러는 사이 이 중사는 가해자로부터 “차라리 죽어버리겠다”는 문자를 받는 등 2차 가해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원치 않는 회식 강요’(248조2), ‘공간 분리 등 피해자 보호’(244조), ‘신고접수 뒤 성폭력 고충처리부서로 이송’(246조6), ‘지체없이 군 수사기관에 조사 요청’(246조2) 등 모두 국방부 부대관리훈령 위반이다. 2일 오후 공군 부사관 성추행 사건의 가해자인 장아무개 중사가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용산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장 중사에 대한 구속영장은 이날 밤 발부됐다. 국방부 제공국방부는 이미 지난해 ‘성폭력 예방활동 지침’을 통해 성범죄자에게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도’, 묵인·방조·은폐·비호 행위를 한 이들에겐 ‘성폭력 등 행위자와 동일한 징계양정 기준’을 적용하겠다는 엄정한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유족들이 3일 노 준위 등 2명을 국방부 검찰단에 고소할 때까지 사건 무마와 은폐에 가담했던 이들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어진 부실 수사는 이 중사에게 더 큰 상처를 입혔다. 이 중사는 “그만해 달라. 나를 나중에 어떻게 보려고 그러냐”며 가해자를 만류하는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차량 블랙박스를 확보해 직접 공군 제20전투비행단 군사경찰에 제출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주장’만이 맞서는 여느 성범죄와 달리 범죄 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물증을 확보한 것이다. 군사경찰은 그런데도 사건 발생 보름만인 3월17일 장 중사에 대한 첫 조사를 진행했다. 혐의 입증에 핵심 증거가 될 수 있는 휴대전화 압수는 사건 발생 석달 만인 지난달 31일에야 임의제출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성용 공군 참모총장은 2일 국방부 검찰단이 부랴부랴 나서 장 중사를 구속하자 “왜 이게 이제 와 되는 것이냐”고 한탄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 관계자는 “저희도 참담하다. 군사경찰과 군 검찰이 너무 무능하다. 보고를 독촉해도 너무 늦고, 사실과 다른 내용이 올라올 때도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이번 부실 수사가 역량 부족 때문인지, 사건 은폐를 위한 의도적인 것이었는지에 대해선 국방부 검찰단의 철저한 수사를 통해 규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이 중사에게 마지막 타격을 가한 것은 군의 방치와 괴롭힘이었다. 이 중사는 사건 발생 직후 두달 동안 청원 휴가를 다녀와 5월3일 복귀했다. 그 이전까지는 군 상담관과 22차례 상담이 이뤄지는 등 나름의 보호 조처가 이뤄졌지만, 휴가 복귀 뒤엔 이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이 중사가 옮겨간 제15특수임무비행단을 향해 “첫 출근 날부터 혼자 야근을 시켰다”, “피해 신고 뒤 2주 동안 날짜·시간별로 뭘 했는지 적어내라고 했다”며 집단 괴롭힘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 또한 국방부 검찰단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이 중사가 ‘조직이 더 이상 자신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절망에 빠졌을 무렵인 5월 말까지 가해자인 장 중사는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불구속 상태에서 한 차례 조사를 받았을 뿐이었다. 이 중사는 부대를 옮긴 지 나흘 만인 5월22일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 중사를 성추행한 것은 장 중사 개인이었지만,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성폭력 피해자의 고통에 철저히 무심했던 거대한 군 조직이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한겨레가 ‘세번째 벗’을 찾아갑니다, 서포터즈 ‘벗’▶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코로나19 기사 보기[ⓒ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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