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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체이탈 사과' 화 키웠다…번지는 '능라도 음모론' [뉴스원샷]
- 정은지
- 21-06-05
본문
━유지혜 외교안보팀장의 픽 : P4G ‘능라도 참사’ P4G 회의 개막영상 캡처.글로벌 외교 행사나 결과물에 지명이 들어가는 의미는 남다르다. 그 자체로 역사적 상징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는 미ㆍ소 간 군축 합의와 냉전 종식의 시발점이 된 1986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간 회담 장소로도 널리 알려졌고, 1951년 연합군과 일본의 평화조약 체결 이후 구성된 2차 세계대전 전후 국제질서는 조약 체결 지명을 따 샌프란시스코 체제라고 부른다.‘서울 선언’도 역사적으로 기록될 기회가 있었다. 서울 선언은 지난달 30~31일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 개최한 환경 분야의 다자 정상회의인 P4G(녹색성장 및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 정상회의의 결과물이다.▶지구 온도 상승 1.5℃ 이내 억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향상 ▶해양플라스틱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 결속 등 각 정상들의 기후 변화 대응 의지를 포괄적으로 담았다. 올해는 세계 각국이 2030년까지 달성해야 할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약속한 파리 협정에 따라 본격적인 행동을 시작하는 첫해라 의미가 더 컸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 정상토론세션에서 서울선언문을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하지만 이틀간의 정상회의 뒤 남은 것은 ‘능라도 영상’뿐이다. 개막식 영상에서 한국을 소개하는 부분의 시작점을 서울이 아닌 평양 능라도 위성사진으로 잡은 사실이 확인된 이후 P4G 정상회의와 관련해 이슈가 되는 것은 해당 영상밖에 없다. “서울 선언이 아니라 평양 선언이라고 해야 맞겠다” “P4G의 P가 평양이었느냐” 등 비아냥이 공공연히 나온다.한국이 ‘기후 리더십’의 앞줄에 서고, 서울 선언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역사적 지표로 남을 기회를 잃은 것은 국가적 손실이다. 정부는 남 탓을 할 수도 없다. 능라도 위성사진을 넣은 것은 영상을 만든 외주 제작사이지만, 이에 대한 관리ㆍ감독 책임은 엄연히 정부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태 초기 정부의 입장은 다소 안일하기까지 했다. 청와대조차 큰 문제의식을 드러내지 않았고, 정부 차원에서 처음 나온 공식 입장은 “영상제작사 측의 실수이며, 같은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히 주의하겠다”(5월 31일, P4G 정상회의 준비기획단)는 게 전부였다.정의용 외교부 장관(왼쪽)과 한정애 환경부 장관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정부합동브리핑실에서 열린 '2021 P4G 서울 정상회의' 결과 합동 브리핑을 마친뒤 미소 짓고 있다. 뉴스1 ‘행사는 다 끝났는데 재발 방지 노력을 하겠다는 게 무슨 이야기냐’는 비판이 나오자 1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구체적인 경위조사가 필요할 것 같다. (P4G정상회의)준비기획단에서 끝까지 세밀하게 챙기지 못한 실수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장관이 유감 표명을 한 것으로 자세를 낮춰 사과했다고 인식했을 수 있다.하지만 전 세계에 대한민국의 수도가 서울이 아니라 평양으로 소개된 것은 단순히 ‘외교 참사’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상대국에만 결례라면 모르겠지만, 이번 사안은 국민이 받았을 충격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또 유감 표명이 외교적으로 사과의 의미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제3자의 잘못에 대한 불만을 드러낼 때 쓰기도 하는 표현이다. 정부가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했다면, 이런 모호한 ‘외교적 언어’가 아니라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직접적인 ‘사과의 언어’를 쓰는 게 맞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정부의 안일한 대응은 더 무서운 후폭풍을 낳고 있다. 능라도 영상 삽입에 ‘누군가의 의도’가 있었다는 음모론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대내외 행사 홍보를 총괄해온 특정 인사의 이름도 공공연히 거론된다. 2021년 대한민국에서 이런 음모론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믿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실제 단순한 실수로만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영상 제작사가 찾아 쓴 영상 원본은 제목에 ‘북한 평양’이 명시돼 있었고, 지구 밖에서 줌인하는 방식으로 들어가 능라도 위성사진을 20초 넘게 보여준다. 대동강과 한강을 헷갈렸다는 해명이 설득력을 잃는 이유다. 결국 정부가 철저한 조사를 통해 이런 의혹에 답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차원의 조사만으로 모든 진상을 규명하거나 책임을 가리기 힘들다면 민ㆍ형사상 조치까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금 나오는 이야기들이 정말 음모론인지 아닌지까지 포함해, 국민은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gang.co.kr▶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 이상언의 '더 모닝'▶ 건강한 주식 맛집, 앤츠랩이 차린 메뉴▶ '실검'이 사라졌다, 이슈는 어디서 봐?ⓒ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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