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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 귀환…4년 반 침묵 깨고 자코메티 '거대한 여인'도 깨우고
- 정은지
- 21-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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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미술관 리움 10월 8일 재개관개점휴업 끝내고 '기획전' 재개 '상설전' 개편자코메티·부르주아·쟝사오강 등 유명작 즐비전시규모·내용 '이건희컬렉션 특별전+α' 전망이건희컬렉션 주도 이서현 운영위원장 전면에국립현대미술관·중앙박물관 협업 실현도 관심4년 6개월여의 침묵을 깨고 10월 8일 재개관하는 삼성미술관 리움의 전경. 현대미술작품으로 상설전을 여는 ‘뮤지엄 2’의 공간이다. 이 전시장에선 단연 이 작품,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청동조각 ‘거대한 여인 Ⅲ’(1960·오른쪽)이다. 이건희컬렉션 발표를 앞두고 세간의 입에 끊임없이 오르내리느라 마음고생이 심했을 여인이다. 왼쪽으로 지그마르 폴케의 ‘카나카스의 복수’(1988), 게오르크 바젤리츠의 ‘민속무용 Ⅱ’(1989)가 보인다(사진=삼성미술관 리움 홈페이지).[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김환기 회고전’이 마지막이었다. 삼성미술관 리움이 공식적으로 언급한 기획전 말이다. 전시는 열지도 못했다. 열겠다는 예고편만 날린 그 시점에 멈춰 섰으니까. 2017년 3월의 일이다. ‘김환기 회고전’은 그해 4월부터 진행할 예정이었으니 진짜 코앞이었다. ‘리움과 김환기’. 거대한 두 산맥이 과연 어떤 장면을 연출할지 미술계는 물론 대중의 관심도 한껏 달아올랐던 터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홍라희와 김환기’였다. 국내 미술계를 쥐락펴락한 그 홍라희와 그 김환기. 두 인물이 이뤘을 극적인 시너지를 어디서 다시 찾을 수 있겠나. 하지만 지상 최대의 이벤트가 될 뻔했던 드라마는 끝내 불방했고 두고두고 많은 이들의 아쉬움만 번져냈다. 리움미술관이 다시 문을 연다. “10월 8일부터 운영을 재개한다”고 못을 박았다. 호암미술관도 함께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과 경기 용인시 처인구 호암미술관은 ‘이건희컬렉션’, 아니 그 이전 ‘삼성컬렉션’을 세우고 가꾼 양대 축이다. 이병철(1910∼1987) 삼성 창업자와 이건희(1942∼2020) 회장으로 이어진 삼성가 미술품 소장사에서 주춧돌이란 뜻이다. 두 주춧돌은 삼성문화재단이 관리·운영하고 있다. 귀환하는 리움미술관의 신고식은 이를 기념하는 ‘재개관 기념 기획전’으로 치를 예정이다. 타이틀은 ‘인간, 일곱 개의 질문’. 미술관은 “예술의 근원인 인간을 돌아보고 위기와 재난의 시기에 인간 존재의 의미를 되새기는 인문학적 전시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를 위해 국내 대표 설치미술가인 이불, 양혜규, 서도호, 박이소 등과 더불어 미디어 아티스트 정연두 등도 나선다. 10월 8일 다시 문을 여는 삼성미술관 리움의 전경. 1년여간의 대대적인 리모델링 중에서도 특히 공을 들였다는 로비 공간이다. 아름드리 기둥이 강건하게 떠받친 탁 트인 로비의 둥근 천장 아래로 최정화의 설치작품 ‘연금술’(2014)이 매달려 있다(사진=삼성미술관 리움 홈페이지).이름만 걸고 명맥만 유지하던 ‘상설전’도 새로운 주제를 걸고 전면 개편해 공개한다. “지금껏 전시하지 않았던 작품을 대거 선보일 것”이라며 기대감을 높였다. 사실 상설전은 이건희 회장 소장품 2만 3000여점이 국가기관에 기증되며 대형 변화가 예고됐던 터다. 그렇다고 규모와 내용을 상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이미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에서 열고 있는 ‘이건희컬렉션 특별전’으로 슬쩍 엿보기도 했으니. 그들 전시의 규모와 내용이 확장한 형태라고 봐도 무방한 거다. 덕분에 지난 몇개월 동안 이건희컬렉션을 타고 실체보다 이름을 세상에 먼저 알린 유명 작품들을 두루 살필 수 있게 됐다.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윌렘 드 쿠닝의 ‘무제 ⅩⅣ’(1975),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 ‘밀실 XI’(초상·2000), 중국작가 쟝사오강의 ‘소년’(2009) 등이다. 여기에 강력한 한방이 될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거대한 여인 Ⅲ’(1960)도 나선다. 세계적인 조각 거장 자코메티의 ‘거대한 여인 Ⅲ’은 이건희컬렉션이 발표되기 이전에 수없이 입을 탔던 작품이다. 이유는 작품가 때문. 자코메티의 작품들은 미술시장에서 수백억원에서 1000억원대까지 거래되고 있다. 호암미술관도 재개관을 기념한 기획전을 준비한다. ‘야금(冶金)-위대한 지혜’란 테마로 열 전시는 금속공예를 기둥으로 세우고 전통부터 현대까지 한국미술사를 되짚는 융합전시로 꾸리게 된다.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현대미술작품으로 상설전을 여는 ‘뮤지엄 2’의 전경이다. 오른쪽 벽에 쟝사오강의 ‘소년’(2009)이 걸렸다. 멀리 왼쪽 벽으론 에바 헤세의 ‘무제’(1963)가 보인다(사진=삼성미술관 리움 홈페이지).홍라희 관장 사임 후 4년 넘게 닫아걸었던 빗장리움미술관의 재개관은 ‘그때’ 이후 4년 6개월여 만이다. ‘김환기 회고전’을 멈춰 세울 만큼 중차대했던 ‘그 일’은 홍라희(76) 관장의 전격 사임이었다. 당시 홍 관장은 호암미술관장직도 같이 내려놨다. 후임도 정하지 않은 급작스러운 일이라 세간에선 동생 홍라영(61) 총괄부관장이 미술관을 맡아 운영할 것이란 짐작들을 내놨더랬다. 하지만 불과 이틀 뒤 홍 부관장도 연달아 사임하자 미술계는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삼성이 미술사업에서 손을 떼려는 신호가 아니냐” “리움미술관이 제 기능을 못하면 국내 미술시장의 위축은 불 보듯 뻔하다”며 웅성거렸던 거다. 홍 전 관장이 왜 사임했는가를 두곤 ‘숨은 사연 찾기’를 하느라 난리도 아니었지만 이해할 만한 “일신상의 이유”가 꼽혔다. 남편 이건희 회장의 와병에 아들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이어 미래전략실 해체라는 삼성그룹의 격변까지. 그 와중에 무슨 미술이냐고 한다면 납득하지 못할 것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홍 관장의 개인미술관이 아니었음에도 이후 리움미술관은 운영을 접었다. 보통의 미술관이라면 후임 관장을 선임하고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 운운하는 수순을 밟았을 터. 하지만 리움미술관은 관장도 없이 상설전만 이어갈 뿐 말 그대로 ‘개점휴업’ 상태에 돌입했던 거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아예 휴관을 선언했다. 이번 재개관을 발표하며 삼성문화재단이 “2020년 2월 25일 이후 약 1년 7개월간의 휴관을 마치고”라고 공식화한 것은 이때부터를 말하는 거다. 삼성문화재단은 “휴관기간 동안 역동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미술관으로 도약하고, 관람객과 소통하며, 새로운 문화경험을 제공하고자 전시와 공간 리뉴얼을 마치고 새롭게 출발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삼성미술관 리움의 기획전시장 전경. 국내 대표 설치미술가인 이불, 양혜규, 서도호, 박이소, 또 미디어 아티스트 정연두 등의 작품이 이 전시장에 들어차 있다. 천장에 걸린 이불의 설치작품 ‘무제’(2002) 뒤로 배영환, 함경아 앙혜규의 작품들이 멀찌감치 자리를 잡았다(사진=삼성미술관 리움 홈페이지).미술계, 리움미술관 역할 기대…“재개관 환영”사실 리움미술관이 문을 다시 연다는 얘기는 지난해 말부터 삐져나왔더랬다. 한창 리모델링 중이라며, 시점은 올 3월로 예상했다. 그런데 1월 공교롭게도 이재용 부회장이 다시 법정구속되고, 미술계로선 핵폭탄급쯤 될 ‘이건희컬렉션’이란 일련의 사건에 휩싸이며 그 시기가 늦춰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재개관과 맞물린 가장 큰 변화는 리움미술관 운영위원장인 이서현(48)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의 부상이다. 이 이사장은 이건희컬렉션 기증을 사실상 주도해왔다. ‘특별전’이 열린 뒤 홍 전 관장과 함께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을 둘러보기도 했는데. 덕분에 지난달 본지와 인터뷰한,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이 말한 ‘3자 협업’도 탄력을 받게 됐다. 미술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윤 관장은 “이건희컬렉션이란 공통분모를 가진 리움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이 함께하는 3자협의체를 제안”했고, “그렇게 해보자는 대답을 들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4년 6개월여의 침묵을 깨고 10월 8일 재개관하는 삼성미술관 리움의 전경. 1년여간의 대대적인 리모델링 중에서도 특히 공을 들였다는 로비 공간의 부분이다. 앞에 보이는 조각상은 나와 코헤이의 ‘픽셀-중첩된 사슴 #6’(2012). 뒤쪽으로 벽면을 장식한 리암 길릭의 ‘일련의 의도된 전개’(2014)가 보인다(사진=삼성미술관 리움 홈페이지).리움미술관이 주목받는 건 비단 ‘삼성’이란 이름값 때문만은 아니다. 말 그대로 ‘국내 최고’라서다. 사립미술관으로선 단연 톱이고 국립미술관과 견줘도 나으면 나았지 뒤지지 않는다. 그 덕에 일거수일투족 움직일 때마다 이슈를 만들었고 그 중심에 섰더랬다. 이번 리움미술관 재개관 소식에 미술계는 “무조건 환영한다”는 반응 일색이다. “국내 미술시장을 좌우할 만큼 막대했던 예전 영향력에 더해 이건희컬렉션으로 무게감까지 생겼다”며 “남은 건 세계로 확장해나가는 일”이라고 리움미술관의 역할을 기대했다. 다만 재개관을 기회로 달라진 모습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그간 리움미술관이 고수했던 닫힌 분위기를 바꿔 대중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기를 바란다”는 당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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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추석 연휴 기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종전선언 승부수를 재차 띄운 이후 북한이 잇달아 유화적인 담화를 내놓으면서 남북 관계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문 대통령이 27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文정권 "北 유화적 반응만으로도 의미"…野 "완전한 비핵화가 평화의 시작점"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말 국제무대에서 '종전선언'을 재차 띄우면서 지지부진했던 남북·북미 관계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북한이 관련한 담화를 잇달아 세 차례나 내놓으면서 조건부로 대화 재개 가능성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정부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최근 북한의 반응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실질적인 남북 관계 진전에 대해선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온다.북한은 문 대통령의 이번 종전선언 제안을 지렛대 삼아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한국 정부가 태도를 바꿀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북한의 대남·대미 정책을 총괄하는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의 24~25일 두 차례 담화에는 이런 의도가 고스란히 담겨있다.김 부부장은 문 대통령의 제안을 "흥미 있는 제안, 좋은 발상"이라고 평가하면서 '이중 기준'과 '적대시 정책' 철회, 공정성과 서로에 대한 존중의 자세 유지 등의 조건이 충족될 경우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재설치', '남북 정상회담 개최'도 건설적인 논의를 거쳐 이른 시일 내에 이뤄질 수 있다고 했다. 김 부부장에 앞서 북한 리태성 외무성 부상은 종전선언에 앞서 미국이 대북 적대 정책을 먼저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담화를 발표하기도 했다.다만 북한은 유화적 담화와는 달리 27일까지도 우리 측의 남북 통신연락선 통화에는 응답하지 않았다. 통신연락선을 통한 남북 연락은 지난해 6월 북한이 개성공단 내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하면서 중단됐다가, 지난 7월 27일 남북 정상 간 합의에 의해 13개월 만에 전격적으로 복원됐다. 하지만 북한은 복원 2주 만에 후반기 한미 연합군사훈련 개최를 이유로 다시 응답하지 않고 있다.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24~25일 잇달아 담화를 내고 조건부로 종전선언, 나아가 남북 정상회담까지 가능하다고 밝혔다. 지난 2018년 9월 18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열린 2018 평양정상회담 공식 환영식에 참석해 문 대통령 내외를 영접하는 김 부부장. /평양사진공동취재단이 가운데 문재인 정권은 북한의 유화적 반응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내놨다. 통일부 관계자는 27일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북한도 김 부부장 담화를 통해 남북 관계의 조속한 회복과 한반도 평화·안정을 바라고 있으며 종전선언,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재설치, 남북 정상회담 등 남북 간 관계 개선을 위한 여러 문제를 건설적 논의를 통해 하나씩 해결해나갈 수 있다고 밝힌 데 대해 의미 있게 평가한다"라며 "이러한 논의를 위해서 남북 간 원활하고 안정적인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한 만큼 우선적으로 남북 통신연락선이 신속하게 복원되어야 한다"고 말했다.일단 직접적인 대화를 재개한 뒤 남북 간 여러 현안을 차근차근 풀어나가겠다는 뜻이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도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비슷한 입장을 밝히면서 "(북한이) 과거에 비해서 구체적 요구 사항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는데, 대화의 여지를 과거보다 능동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라며 "북한의 담화가 연속으로 나오고, 미국도 반응을 계속 발신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좋은 의미로 해석이 된다면 문 대통령이 쏘아 올린 공이 충분한 모멘텀을 보이고 있고, 좋은 성과로 이어질 수 있겠다 하는 기대는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부부장의 발언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남북 관계 대화의 시작과 북미 관계 대화의 시작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당에서도 뒷받침해가겠다"라며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협상의 문이 다시 열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뒷받침하겠다"고 김 부부장 담화와 정부 대응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최근 담화에서 '개인적 의견'을 전제로 조건부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을 시사한 가운데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와 교감 없이 나온 메시지를 아닐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뉴시스DB하지만 일각에선 북한이 대화의 문을 완전히 닫지는 않았지만, 들어줄 수 없는 조건을 철회하지 않는 한 실질적인 남북·북미 관계 개선은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문성묵 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문제는 조건이다. 타협의 여지, 수용 가능성이 있어야 하는데 북한이 말한 이중 기준 철회는 자신들의 핵 보유·개발을 인정하고, 비핵화가 아니라 핵 군축 협상에는 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라며 "그러려면 대북 제재도 풀라는 것인데 우리도, 국제사회도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그러면서 문 센터장은 "북한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통신선 연락을 하고, 대화를 한다고 해서 남북 관계가 좋아지고 지속가능한 평화는 오지 않는다"라며 "미국도 북한이 조건을 내려놓고 진정성 있는 자세로 대화에 나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우리보고 선택을 하라고 하는데,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한 선택은 우리가 아니라 북한이 해야 한다. 북한의 태도 변화는 요구하지 않으면서 대화만 요구하는 것은 진정한 목표 달성(비핵화)은 어렵다"고 내다봤다.양준우 국민의힘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대화와 타협을 통해 평화를 얻을 수 있다면 거부할 이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문재인 정권 임기 동안 반복되어왔던 것처럼 북한에 휘둘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진정한 평화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그 시작점"이라며 "평화가 아니라 대화하는 모습 자체가 목표가 되어선 곤란하다. 앞선 세 차례의 실패(남북 정상회담)를 반면교사 삼아 실질적인 성과가 있도록 이성적인 접근을 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추석 연휴 기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종전선언 승부수를 재차 띄운 이후 북한이 잇달아 유화적인 담화를 내놓으면서 남북 관계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문 대통령이 27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文정권 "北 유화적 반응만으로도 의미"…野 "완전한 비핵화가 평화의 시작점"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말 국제무대에서 '종전선언'을 재차 띄우면서 지지부진했던 남북·북미 관계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북한이 관련한 담화를 잇달아 세 차례나 내놓으면서 조건부로 대화 재개 가능성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정부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최근 북한의 반응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실질적인 남북 관계 진전에 대해선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온다.북한은 문 대통령의 이번 종전선언 제안을 지렛대 삼아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한국 정부가 태도를 바꿀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북한의 대남·대미 정책을 총괄하는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의 24~25일 두 차례 담화에는 이런 의도가 고스란히 담겨있다.김 부부장은 문 대통령의 제안을 "흥미 있는 제안, 좋은 발상"이라고 평가하면서 '이중 기준'과 '적대시 정책' 철회, 공정성과 서로에 대한 존중의 자세 유지 등의 조건이 충족될 경우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재설치', '남북 정상회담 개최'도 건설적인 논의를 거쳐 이른 시일 내에 이뤄질 수 있다고 했다. 김 부부장에 앞서 북한 리태성 외무성 부상은 종전선언에 앞서 미국이 대북 적대 정책을 먼저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담화를 발표하기도 했다.다만 북한은 유화적 담화와는 달리 27일까지도 우리 측의 남북 통신연락선 통화에는 응답하지 않았다. 통신연락선을 통한 남북 연락은 지난해 6월 북한이 개성공단 내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하면서 중단됐다가, 지난 7월 27일 남북 정상 간 합의에 의해 13개월 만에 전격적으로 복원됐다. 하지만 북한은 복원 2주 만에 후반기 한미 연합군사훈련 개최를 이유로 다시 응답하지 않고 있다.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24~25일 잇달아 담화를 내고 조건부로 종전선언, 나아가 남북 정상회담까지 가능하다고 밝혔다. 지난 2018년 9월 18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열린 2018 평양정상회담 공식 환영식에 참석해 문 대통령 내외를 영접하는 김 부부장. /평양사진공동취재단이 가운데 문재인 정권은 북한의 유화적 반응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내놨다. 통일부 관계자는 27일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북한도 김 부부장 담화를 통해 남북 관계의 조속한 회복과 한반도 평화·안정을 바라고 있으며 종전선언,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재설치, 남북 정상회담 등 남북 간 관계 개선을 위한 여러 문제를 건설적 논의를 통해 하나씩 해결해나갈 수 있다고 밝힌 데 대해 의미 있게 평가한다"라며 "이러한 논의를 위해서 남북 간 원활하고 안정적인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한 만큼 우선적으로 남북 통신연락선이 신속하게 복원되어야 한다"고 말했다.일단 직접적인 대화를 재개한 뒤 남북 간 여러 현안을 차근차근 풀어나가겠다는 뜻이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도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비슷한 입장을 밝히면서 "(북한이) 과거에 비해서 구체적 요구 사항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는데, 대화의 여지를 과거보다 능동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라며 "북한의 담화가 연속으로 나오고, 미국도 반응을 계속 발신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좋은 의미로 해석이 된다면 문 대통령이 쏘아 올린 공이 충분한 모멘텀을 보이고 있고, 좋은 성과로 이어질 수 있겠다 하는 기대는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부부장의 발언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남북 관계 대화의 시작과 북미 관계 대화의 시작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당에서도 뒷받침해가겠다"라며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협상의 문이 다시 열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뒷받침하겠다"고 김 부부장 담화와 정부 대응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최근 담화에서 '개인적 의견'을 전제로 조건부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을 시사한 가운데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와 교감 없이 나온 메시지를 아닐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뉴시스DB하지만 일각에선 북한이 대화의 문을 완전히 닫지는 않았지만, 들어줄 수 없는 조건을 철회하지 않는 한 실질적인 남북·북미 관계 개선은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문성묵 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문제는 조건이다. 타협의 여지, 수용 가능성이 있어야 하는데 북한이 말한 이중 기준 철회는 자신들의 핵 보유·개발을 인정하고, 비핵화가 아니라 핵 군축 협상에는 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라며 "그러려면 대북 제재도 풀라는 것인데 우리도, 국제사회도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그러면서 문 센터장은 "북한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통신선 연락을 하고, 대화를 한다고 해서 남북 관계가 좋아지고 지속가능한 평화는 오지 않는다"라며 "미국도 북한이 조건을 내려놓고 진정성 있는 자세로 대화에 나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우리보고 선택을 하라고 하는데,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한 선택은 우리가 아니라 북한이 해야 한다. 북한의 태도 변화는 요구하지 않으면서 대화만 요구하는 것은 진정한 목표 달성(비핵화)은 어렵다"고 내다봤다.양준우 국민의힘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대화와 타협을 통해 평화를 얻을 수 있다면 거부할 이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문재인 정권 임기 동안 반복되어왔던 것처럼 북한에 휘둘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진정한 평화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그 시작점"이라며 "평화가 아니라 대화하는 모습 자체가 목표가 되어선 곤란하다. 앞선 세 차례의 실패(남북 정상회담)를 반면교사 삼아 실질적인 성과가 있도록 이성적인 접근을 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